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의 피해자 행세 (문단 편집) === 서방 측의 시각 === [[파일:트럼프좆본.jpg]] [[파일:baseball_new9-20200816-120028-000.jpg]] [youtube(lnAC-Y9p_sY)] 유튜버 Knowing Better의 Playing the Victim - Historical Revisionism and Japan[* 정작 이들에게 일본이 벌인 전쟁범죄나 일본이 벌인 악랄한 식민정책을 언급하면 "증거가 있나?", "옛날일 꺼내지 말라"며 화를 낸다. 오히려 이들은 위안부 문제에서 알지도 못하거나 알면서도 왜곡된 주장한다.] 일본의 이런저런 징징거림은 일본인들의 기대와는 달리 [[삽질|그다지 큰 효과가 없다.]] [[일본]]은 이런 짓 하지 않아도 이미 [[냉전]] 시기부터 서방에 매우 중요한 동맹국으로 떠오른 상황인데, 이런 징징거림은 오히려 국가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만 미친다. 한국도 홀로 일본을 비판하기 어려워서 21세기 들어 급성장한 [[중국]]과 일정 협력하는데 중국 역시 중일전쟁기 [[난징대학살]]을 비롯한 온갖 전쟁범죄의 피해국이기 때문에 일본의 이러한 수정주의적 조류에 반발이 심하다. 심지어, 일본과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대만]]도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에 동참하지는 않는다. 사실 대만 정부는 일제와 혈전을 치른 [[중화민국 국민정부]]의 직속 후신이며 [[만주국]], [[731부대]], [[중일전쟁]], [[난징 대학살]], [[충칭 대공습]] 등은 대만 정부가 중국 대륙을 통치하고 있을 때 벌어진 일들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전후 세계 질서인 [[국제연합]] 체계는 전쟁 당시 [[추축국]]에 대항하여 연합을 결성했던 [[미국]], [[중화민국]], [[영국]], [[소련]]을 중심으로 등장했다. 국제연합의 기원은 [[추축국]]을 격파하고 전쟁 이후의 세계 질서를 재정립하려는 목적으로 연합국들이 합심하여 만든 국제기관이다.[* UN의 공식 중국어 명칭이 "联合国(연합국)"이다.] 따라서 이들 국가들 주축으로 건립된 보편적 민주주의의 사상적 배경에는 반파시즘이 원칙적으로 깔려 있다.[* 참고로 국제연합(UN)의 전신은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직후 제국주의에 대한 대책 겸 전쟁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창설된 국제연맹이었므로 반제국주의 이념을 내포했다.] 따라서 나치 독일, 일본 제국, 파시스트 이탈리아는 현재 세계 질서에서는 곧 인류의 적이고, 국제연합의 구 적국 조항이 이를 반영한다. 적국조항이 독일이나 일본, 이탈리아를 전쟁 피해국들이 마음대로 공격해도 좋다는 보증수표는 당연히 아니지만, 그건 이 세 나라가 군국주의 파시스트 정권으로 복귀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이다. 당시 일본과 교전한 [[미국]], [[중화민국]], [[영국]] 및 [[영연방]]은 현재에도 세계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세계질서의 양강인 미국과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영국을 비롯한 영연방 국가들 및 기타 유럽 국가들도 세계 정세에서 여전한 지위를 가진다. 한국에서는 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반일 감정이 아시아에만 존재하고 유럽에는 전혀 없다고 인식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오해이다. 일례로 1960년대에 당시 천황인 [[히로히토]]가 아내 [[나가코 황후]]와 함께 [[미국]], [[대만]], [[영국]], [[네덜란드]]를 방문했을 당시 난리법석했다.[* 단, 2차 대전을 직접 겪은 사람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노쇠해지고 자연사해서 그 수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기에 현재 유럽권에서는 반일 감정이 거의 누그러졌다. 미국과 달리 유럽은 일본에 의한 본토 피해가 전혀 없었고 동남아에서의 교전은 어디까지나 본토 국민들 입장에서는 덜 중요한 주변부의 일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유럽 본토의 주 비판 대상은 당연히 나치 독일이었고 현재는 그 독일에 대한 감정도 완화되었는데 거리가 멀고 유럽 쪽에 철저히 배상한 일본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히로히토는 원래 중국도 방문하려 했는데 전쟁 피해자가 너무 많았던 중국에서 이에 극렬히 반대했고 궁내청에서도 천황의 신변을 우려한 나머지 차선책으로 [[대만]]에 갔다. 다만 이후 히로히토가 죽은 이후 히로히토의 아들이자 그 뒤를 이어 천황이 된 [[아키히토]]가 1992년에 중국을 공식 방문하며 중국에 사죄와 반성을 하는 등 양심 있는 모습을 보였다.] 그나마 미국과 대만에서는 약간의 반일 시위 정도를 제외하면 조용히 넘어갔지만 영국과 네덜란드에서는 매우 살벌했다. 실제로 영국과 네덜란드에선 2차 세계 대전 참전용사들과 그 유족들로 구성된 반일 시위대가 몰려들어 [[쇼와 덴노]]와 [[나가코 황후]]에게 돌팔매와 화염병과 각종 오물을 거침없이 날려댔다. 이들은 하나 되어 히로히토 내외에게 "살인마는 우리나라에서 빨리 꺼져라!"와 "일본 왕을 즉시 전범 재판에 회부하여 사형을 선고하라!"와 "일본 왕이 죽인 우리 가족들을 살려내어 다시 우리들에게 돌려달라!" 등 피켓을 든 시위대가 히로히토 내외가 가는 곳마다 몰려들었고 히로히토 내외는 국빈방문 중에 돌과 화염병, 오물 세례를 맞는 수모를 당했다. 나아가 1989년 [[히로히토]]가 죽자 [[더 선]]을 비롯한 영국의 신문사들은 히로히토의 부고를 축하하며 그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심지어 1990년대에 [[아키히토]]가 영국을 방문했을 때에도 일부 영국 노병들은 [[휘파람]]을 불며 야유하고 [[콰이강의 다리]] 삽입곡으로 유명한 [[보기 대령 행진곡]]을 연주하며 사과와 보상을 요구했다.[* 당시 천황 내외를 태운 마차는 찍소리 못하고 피하기만 했고 상이군인, 노병들이 거리를 두고 비판하니 [[영국의 법 집행|영국 경찰]]들도 직접적으로 테러를 가하지 않는 한 뭐라고 하지 못하며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일제를 타 추축국과 비교했을 때 누가 봐도 독일은 무리수지만, 이탈리아는 정상참작할 여지가 있다. 당시 이탈리아는 전체적인 구심점보다는 자체적인 지방에 소속감이 컸고 반 파시즘적인 저항세력인 [[안티파]] 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난 곳 가운데 하나였다. 특히 1990년대를 분수기로 국내로는 렌조 디 펠리체, 지오반니 파보네, 국외로는 스탠리 페인, 토니 주트 등의 현대 [[역사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2차 대전 당시 [[이탈리아 전선]]은 비단 연합군의 상륙 같은 외부적 요소 뿐만 아니라 전쟁 이전부터 지하에 암약하여 지속적으로 반파시스트 저항 운동을 펼쳐오던 [[공산주의]], [[사회주의]], [[공화주의]], 그리고 무솔리니가 이탈리아 왕실을 [[바지사장]]으로 만들어 버린 것에 반발한 우파 내의 반파시스트적 인사들이 규합하여 터뜨린, 즉 이탈리아 내부의 반파시스트 요소들이 자체적으로 응집하여 터진 하나의 내전으로 보는 시각이 학계 내에서는 주류이다. 그리고 1944년 겨울 아직 파쇼의 지배가 굳건했던 [[살로 공화국]] 영토 내에 여러 개의 동시다발적 무장 봉기를 일으켜 짦은 시간 해방구를 형성했다가 추축군의 재침으로 진압당했던 이탈리아 북부의 수 많은 임시 빨치산 공화국들의 존재는 이러한 이탈리아 반파쇼 빨치산들의 조직과 역량이 결코 연합군의 꼭두각시가 아니라, 이탈리아 민중 내부의 자체적이고, 자발적인 지원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뒷바침한다. 내부 사정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이탈리아는 북아프리카와 발칸, 남프랑스 등 비교적 국소적인 범위에서 제국주의식 침략을 저질렀을 뿐 동유럽이나 동아시아 전선과 같이 수천만의 인명피해를 수반하는 대규모 침략전쟁을 벌이진 않았으며 그렇다고 민간인과 포로에 대한 대규모 학살을 자행하지도 않았다.[* 일례로 이탈리아가 저지른 전쟁범죄 중 심각하다고 평가받는 도메니콘 학살이나 포드험 학살 등은 희생자 규모가 백 단위에 불과하며 이탈리아가 운영한 강제 수용소에서 발생한 희생자 규모도 천 단위이다. 연합국 포로에 대한 처우 역시 3국 중 가장 인도적이었다. 물론 학살은 규모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비난받고 반성할 일이긴 하나 분명 절대적인 규모와 수치에서 다른 두 추축국이나 소련이 자행한 전쟁범죄에 비할 바는 결코 아니다.] 게다가 전쟁의 흐름상 이탈리아는 어디까지나 추축국의 보조자 역할에 머물렀지 주 행위자가 아니었다. 이러한 연유로 이탈리아는 독일, 일본과 달리 전후에도 침략국 처우를 어느 정도 면할 수 있었으며 현대에도 2차 대전과 관련하여 크게 지탄받지 않는다. 그리고 '일본이 피해자면 미국이 가해자라는 결론'이 나오는데, 이러한 논리는 [[네오콘]]을 필두로 한 미국 우익이 절대로 웃어 넘기지 않는다. 네오콘 상당수가 바로 2차 대전 참전 군인이거나 그 후손들이기 때문이다. 일본 극우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미국도 그런 게 있다' 운운하며 [[물귀신]] 작전으로 끌어들이려다가 네오콘들이 폭발하여 미국 하원에서 위안부 문제 결의안 통과에 기여한 적도 있다. 당연하지만 [[성노예]]를 성매매녀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